The sentences are an hour-long conversation with designer Kim Guk-han on NOVEBER 25, 2022
본문은 11월 25일 김국한 디자이너와 나눈 한 시간의 대화다.
-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김국한입니다. 현재는 계원예술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 먼저 이렇게 대화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제도화된 디자인과 그렇지 않은 디자인의 경계에서 세심하게 관찰자가 되어 작업을 하시는 점이 멋있게 느껴져서 이렇게 연락드리게 되었어요. 또 그런 작업을 하는 태도가 독립적이라는 인상이어서 더 만나뵙고 싶었어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학교를 다니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본 작업물들이 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아니요. 학교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없고 개인 혹은 팀으로 외부에서 했던 활동들이에요. 그런데 팀원들은 학교 친구들이긴 했죠.
- 아직 학생이시라니 사실 많이 놀랐어요. 학생일 때 얻을 수 있는 좋은 인프라는 개인에 따라서 동료와, 선생님 이렇게 둘로 나뉜다고들 하는데 국한 님은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더 크게 느껴지셨나요?
사실 저는 스무 살 때 순수미술을 전공하다 제 성격상 잘 맞지 않는 걸 느꼈고 반수를 결정하며 진로를 튼 케이스에요. 초등학생 때부터 포토샵으로 이것저것 만들고 놀았는데요. 포토샵 키드라고 하죠? 아무튼 그랬는데 순수미술 말고 뭘 하고 싶나 생각했을 때 어릴 때부터 해왔던 '디자인'이 생각났고 그것들을 모아 계원예술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지원했었죠. 지원하려고 보니 교수진들이 궁금했고 한 분 한 분 구글링했어요. 그때 최슬기 교수님의 작업을 보게 됐고 아 여기에 입학해서 이분께 배워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좋은 선생님을 얻은 게 더 큰 것 같아요. 아! 물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얻었습니다. 제일 친한, 거의 가족 같은 친구들도 다 대학교에 와서 사귀었어요.
- 신기하네요. 그렇게 선택한 디자인은 잘 맞나요?
나름 잘 맞는 것 같아요.
- 슬기와 민 인터뷰를 몇 개 읽어봤는데 최성민 디자이너님도 처음엔 디자인보다는 미술 쪽에 더 관심을 두셨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그런 분들이 현업에서 날아다니시는(?) 것도 같고 디자인도 잘하시는 걸 보면 신기해요. 또 재밌었던 게 진행하신 작업 중에서 인터뷰 프로젝트가 있더라고요.
네 맞아요. 90APT라고, 그걸 보셨네요.
- 네, 구글링에서 김국한 디자이너를 검색하면 그게 제일 상단에 나와요. 초반에 언급했듯 기획과 디자인에서 모두 독립적으로 활동하신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첫 클라이언트 잡은 언제였나요?
이게 혹시 어떤 기준일까요? 기간을 언제까지로 설정해야 할지...
- 너무 까마득해서 그러시는 건가요?
왜냐하면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포토샵을 해와서 대학교 오기 전에도 작업한 것들이 있거든요.
- 본인이 생각했을 때 첫 포트폴리오라고 소개할만한 걸로 기준을 잡아볼까요?
제 홈페이지 제일 하단에 있는 'December December'라는 전시 포스터일 거예요. 이게 뭐냐면요, 정식으로 의뢰를 받아서 한 것은 아니고요. 졸업 전시 후에 제가 속한 편집 스튜디오 동기들의 졸업 작품들을 따로 모아 시청각이라는 공간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디자인한 건데요. 왜 이걸 꼽냐면 그 당시 제가 만들어보고 싶었던 시각적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작업의 분위기나 방법론이 지금까지 쭉 이어오고 있는 걸 보면 제 포트폴리오의 시작점으로 삼아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 멋지네요. 주니어 때 롤 모델로 삼으신 분은 최슬기 디자이님인가요?
아무래도 최슬기 교수님을 제일 큰 본보기로 삼았죠. 대학교를 교수님 한 분만 보고 지원한 것이니까요. 종이와 활자체, 정보를 다루는 태도와 생각을 많이 엿보고 배웠어요. 그렇지만 롤 모델은 더 많아요. 대충 머릿속으로 세보니 8명 정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은 모두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디자이너는 가볍고 미끄러지는, 그러면서도 세련된 감각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디자이너는 별거 없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밀도를 정말 멋지고 쿨하게 쌓고요. 혹은 모든 것들을 정교하게 잘 조절해내는 나머지 인간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드는 디자이너도 있고요.
- 개인 위주로는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아서 주변에 관해 이야기 해볼게요.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시작하기까지는 보통 어떤 과정이 수반되는지 궁금했어요.
주로 친구들과 실없는 대화 할 때 괜찮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와요. 90APT도 그랬고요. 디자이너 민동인 씨와 함께했던 '양면인쇄 프로젝트'의 경우엔, 그 당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걸 너무 하고싶었어요. 그런데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나 컨텐츠 없이 뭘 만들기가 꽤 어렵잖아요. 그래서 디자이너 두 명이 서로 디자이너이자 클라이언트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디자이너가 주로 다루는 '종이'도 양면이니 말이 된다 싶었죠. 이걸 혼자 생각하다가 '스튜디오 데스크'를 공동 운영했던 디자이너 임주연 씨에게 제안했어요. 그러면서 더 살이 붙여지고 있었는데, 주연 씨와 제가 스케줄이 잘 맞지 않아 다른 디자이너와 진행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하고 동인 씨에게 연락을 드려 함께하게 되었어요. 동인 씨와 대화하면서도 기획이 일부 수정됐고요.
- 어떻게 보면 프로젝트로서, 페이라든지 이런 게 전혀 없는 상태로 이제 제안을 하고 그게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거네요.
그러게요. 그러고 보니 그런 생각도 못했네요.
- 서로 좋은 영향을 주는 관계네요. 저처럼 멋있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결과도 좋았으니까요. 처음 제안할 때 작업을 하면서 트러블을 만들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셨나요?
책임감을 가지고, 트러블을 만들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건 당연한 거였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 성격상 친한 친구에게도 제안하지 못하죠.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동인 씨께 무턱대고 "이런 기획을 생각했는데 같이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하고 제안했었죠.
- 실제로 어떻게 프로젝트를 조율하시는 편인가요? 시간 내에 완성이 지켜지지 않으면 조금 재촉(?) 하시는 편인지 아니면 속된 말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느슨하게 진행하시는 편인가요?
이 프로젝트의 경우 한 달 주기로 퍼블리싱한다는 규칙을 사전에 세웠어요. 초반엔 늦지도 않고 오히려 엄청나게 빨리 작업을 끝내기도 했는데, 12개월간 하다 보니 오히려 동인 씨가 저를 기다려주는 그림이 됐어요. 제가 뒷심이 부족해서요. 그래도 초반에 설정한 한 달 내외에 모두 퍼블리싱 했습니다! 1년간 꾸준히 한 것만 해도 큰 성과죠.
- 작업을 하는 중에는 개인의 만족에 큰 비중을 두고 작업 시간을 넉넉하게 잡으시는지, 아니면 완성하는 데 더 비중을 두시는지 궁금해요.
클라이언트가 없는 개인 작업 같은 경우엔 기한을 무한대로 늘릴 수 있잖아요. 그런 경우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요. 내년 상반기 혹은 하반기에 완성하자, 이런 식으로요. 차근차근 생각하고 수정하며 진행해요. 반면에 누군가와 같이하는 프로젝트나 외주의 경우에는 서로 정해놓은 마감 기한이 있으니 최대한 맞춰서 해야 하죠. 민폐 끼칠 순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무언가를 디자인할 때 완성된 느낌을 받을 때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 편이에요. 바꿔말하면, 여기서 뭘 더 하면 별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빨리 든달까요.
- 초반에 대부분의 방향을 정하고 그 이후에 디테일한 부분을 손 보신다는 거죠?
맞아요. 전체적으로 스케치하듯 던져놓고 디테일한 부분을 손보는 편이에요.
- 그럼 만족이 덜 된 채 그냥 마무리하신 경우도 있었나요?
그런 경우가 있죠. 앞으로도 있을 거에요. 창작자 스스로 만든 모든 결과물에 만족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지 않나요? 그래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죠.
- 사실은 본인이 한 거라, 나중에 수정할 수는 있잖아요.
저는 일단 어딘가에 공개되고 나면 절대 수정하진 않아요. 거짓말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아쉽게 끝맺은 작업들도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잖아요. 아 저땐 그런 일이 있어서 저렇게 나왔었지 하는 추억도 생기고요.
- 그러면 마음에 들거나 재밌는 비하인드가 있다 하는 작업들 몇 가지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되게 많이 받는데 그럴 때마다 어려워요. 왜냐하면 만드느라 여러 번 보고, 만들고 나서도 자주 본 것들이라서요. 자기 얼굴이 객관적으로 잘났는지 못났는지 모르는 것처럼 제가 만든 것들도 그렇더라고요. 그래도 굳이 꼽는다면 클라이언트들이 어떤 작업을 보고 연락을 많이 주는지를 기준에 두고 골라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 최근에 한 작업인데요. 식물 기반으로 미술과 디자인 작업을 전개하는 '디어스룸'의 BI와 명함 작업이 있고요.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 100필름 100포스터 참여작이었던 ‹누가 우릴 막으리› 포스터, 주한홍콩문화원에서 열렸던 전시 «Instead of an Afterwards» 작업이 있겠네요.
- 제일 재밌게 한 작업은요?
'기글기글' 전시 포스터를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평소에 제가 색을 쓰는 걸 좀 꺼려하거든요. 뭔가 색을 쓸 때 이유가 있어야 된다는 강박 때문에 밑에 보시면 거의 색이 없어요. 써도 그냥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인데 이거는 그래서 뭔가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참여하는 작가분들도 되게 귀엽고 예쁜 것들 되게 많이 만드시고 이미지적으로 뭔가 좀 저도 놀듯이 만들었던 것 같아요. 거기서도 마음에 들어 해주셨고요.
- 클라이언트 측에서 먼저 색을 써달라고 하는 요청이 없었는데 도전적인 마인드로 완성 작업인건가요?
네 맞아요.
- 재밌는 비하인드가 있었던 작업은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현수 평론가, 비평가분에 대한 그래픽을 의뢰받았는데 sns 홍보물이랑 배너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 있었어요. 마감 전까지 도저히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주제가 저급 이론들의 연합이었는데 저급 이론들의 연합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지 정말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그냥 뭔가 제가 생각하는 되게 낮은 것들을 생각해볼 때, 개미가 있더라고요. 개미를 브러시로 만들어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막 그려서 눈 꼭 감고 전달드렸어요. 전달드렸을 때 거기서 엄청 많이 좋아해 주셔서 꽤 만족스러웠던 작업이에요. 저도 되게 마음에 들어요.
- 멋지네요. 스튜디오랑 회사 이제 개인 이렇게 다 경험하셨잖아요. 각각의 장단점을 들어볼까요? 앞에서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대화를 나눈 것 같아서 이번에는 스튜디오에서나 회사에 들어가서 하셨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건 할 얘기가 정말 많죠. 일단 스튜디오에서는 주연 씨와 함께 작업을 했거든요.
- 학교에서 알게 되신 건가요?
네, 졸업 전시를 같이 한 학교 동기에요. 일단 저희가 스튜디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스튜디오 메일로 곧장 들어오는 일은 없었어요. 그래서 개인으로 들어오는 일을 스튜디오로 옮겨서 했었죠. 각자에게 일이 들어오면 상의 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은 일이나 규모가 큰일을 스튜디오에서 하는 방식이었죠. 두 명이 하다 보니 프로젝트마다 자연스럽게 업무 분배가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전체적인 이미지는 제가 구상하고, 세부적인 디테일은 주연 씨가 구상하는 방식으로요. 단점으로는 페이를 반으로 나눈다는 것... 안 그래도 적은 페이를 반으로... 회사는 '매직 스트로베리 사운드'라는 국내 인디 음악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1년 가까이 다녔어요. 거기서도 그래픽 디자인 업무를 맡았고요. 그런데 거기선 클라이언트가 회사가 아니라 거의 뮤지션이었어요. 팀장님이나 사수가 있어서 도와줘도 뮤지션이 별로라고 판단하면 드롭되는 시스템이었어요. 연간 스케줄이 있고 거기에 맞춰 발매될 음악을 들어보고 무드 보드와 스토리 보드를 만들어요. 스케줄이 빽빽할 때면 엄청 힘들어요. 그렇지만 또 배울 수 있는 게 많아서 좋았어요. 그게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고요. 여러 가지를 해 볼 수 있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뮤비나 공연 무대 디렉팅도 했었고, 배너, 피지컬 CD, 배지나 티셔츠 같은 MD도 다 기획하고 만들다 보니 경험치가 올라갔던 것 같아요. 그리고 회사는 수익이 정기적이라는 것도 장점이에요. 주연 씨와 스튜디오를 했을 때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지금은 다음 일이 언제 들어오고 끊길지 예상하지 못하니까 금전적인 부분을 더욱 신경 써야 하는 게 가끔은 힘들어요. 요즘은 가계부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 바쁘셨겠네요. 그러면 뮤지션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줬으면 좋겠어라고 모티브를 던져주는 경우인가요?
그런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어요. 처음부터 먼저 다 제안을 해야 되는 경우도 있고, 완전 다 달라요 근데 보통은 이제 먼저 던져주긴 하죠. 이런 느낌이면 좋겠다.
- 보통은 여러 가지 시안을 만들어주시는지 아니면 그냥 딱 하나의 시안에 비중을 크게 두시나요?
저 같은 경우는 적어도 2개, 많으면 3~4개 정도 만들어서 제안해요. 롤 모델 중 한 분은 굳이 뭣하러 여러 개 만드냐고, 하나만 만들라고 조언해주시긴 했지만, 아직 저는 거기까지 짬이 차진 않아서. 아무튼 그래도 보통은 제가 보기에 제일 예쁜 거 하나, 그냥 그런 거 여러 개 이렇게 구성되죠. 그중 제가 보기에 제일 예쁜 걸 고르도록 설득해야 하는데...
- 딴 거 고르면 당황스럽겠다..
그런 적이 더러 있죠. 그럼 이제 황급히 어떻게든 예뻐보이도록 디벨롭 시키고... 머리 붙잡고요.그런 적이 더러 있죠. 그럼 이제 황급히 어떻게든 예뻐보이도록 디벨롭 시키고... 머리 붙잡고요.
- 하하. 저는 또 궁금했던 게 사실 누구나 포트폴리오에 올리는 작업은 다 너무 멋있잖아요. 가끔은 좋은 소재가 좋은 조건을 형성해주기도 한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고 느꼈거든요. 이렇게 일하시기 전에는 툴을 다룰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타성에 젖은 디자인(?)과 같은 일들도 해보셨을 거라고 예상해봤거든요. 그럴 때 어떻게 상황을 조율하시는지가 궁금했어요.
이전에 잠깐 요식업 회사 디자인팀에서 일 한 적 있어요. 그땐 어떻게든 예쁜 걸 만들어서 제안해보고자 했는데 잘 안 맞더라고요. 일단 회사에서 선호하는 스타일이랑 제 작업 스타일이 달랐고, 내부적으로도 이미 정해놓은 규칙들이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보통 최대한 회사의 이전 작업과 비슷한 이미지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더 배워갈 것이 없었기도 했고, 다른 회사 인턴이 붙어 한 달 만에 그만뒀죠. 그리고 성인이 되어 이렇게 일하기 전에는, 제가 워낙 어릴 때부터 포토샵을 다룰 줄 알았고 디자인은 취미 생활이었거든요. 제가 고등학생 때 엑소를 되게 좋아했고 그래서 엑소 굿즈를 직접 만들어 블로그에서 소규모로 마켓을 했었어요. 그때부터 재밌게 했었던 것 같아요.
- 덕심에서 더 잘 만들고 싶고 그랬겠네요.
그런 마음이 있었죠. 그리고 아까 말씀드리려다 만 건데 제가 엑소에서 첸을 제일 좋아했어요. 그런데 엑소 굿즈 마켓을 운영하던 어느날 첸의 팬 페이지를 운영하시는 분이 저한테 첸 생일 지하철 전광판 디자인을 의뢰해 주셨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인생 첫 디자인 클라이언트 잡이었어요.
- 엄청 열심히 하셨을 것 같아요. 이걸 여쭤본 게 사실 제가 지금 타성에 젖은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클라이언트와 의견이 맞지 않고, 그쪽에서 원하는 내용이 납득이 가질 않는데 제가 디자인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라는 게 한계가 있으니까 거기에서 제가 설득을 시킬 만큼의 공을 못 들이겠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 때 어떻게 타협하시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런 건 하라는 대로 그냥 하는 것 같아요. 일하다 보면 그런 자잘한 일들 엄청 많죠.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릴 빠르게 지나갈 이미지 하나, 페이스북 홍보 이미지 하나를 요청받는다던가. 정말 쳐내는 일들.
-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니까 여기서도 만족이나 성취감을 얻고 싶다는 그런 생각도 있고 당연히 돈을 받는 입장에서 하라고 하는 대로 하게 되긴 하지만 납득이 되질 않는데 그냥 하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그렇게 되니까 이전에 기계처럼 시키는 디자인을 하는 게 워라벨 측면에서는 나한테 더 잘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막상 또 자기만족이 안 되는 일을 하다 보니까 그것도 너무 스트레스더라고요.
저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요식업 회사에서 일했을 때 비슷한 감정이었어요. 그 회사에서 했던 업무가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새로운 지점을 개업하면 공간 규격에 맞춰 메뉴판 크기나 간판을 조절해서 만들어 주는 업무, 가게 전단지, 페이스북에 올리는 홍보 이미지를 만드는 정도였어요. 일 시작한 초반에는 반항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좀 더 깔끔하고 보기 좋게 해 주겠다는데, 규칙 내에서 이대로 해달라니까... 서체도 이 서체, 색도 이 색. 그러면 잘 안 읽히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요. 그럼 이제 그냥 막무가내로 늘리거나 키워달라는 요청도 받고. 제약이 매우 많다 보니, 나중에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
- 맞아요. 어차피 페이도 얼마 안 되는데 하는 생각까지 들고요. 이런 경우에 어떻게 타협하시는지 궁금했었어요.
그때 되게 힘들었어요. 하루에 회사에서 보내는 9시간이 되게 큰 시간이잖아요. 그 시간 동안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을 찍어내는 게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래서 집 가서 혼자 막 내가 좋아하는 이미지를 만들려 하고 그랬어요.
- 와 저는 진짜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겠던데 대단하다. 저는 그리고 그것도 궁금했어요. 지금 학교 다니고 계시지만 하고 싶은 일에 가까운 일을 하시는 거잖아요. 거기서 오는 고민은 없으신가요?
어쨌든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도 하고, 저를 믿고 일을 주시니까 감사하죠. 근데 이제 거기서 어떤 부담감이 생기는 거죠. 또, 성장을 해야 하는데 멈춰있다고 느낄 때 힘들고요.
- 성장에 대한 분위기가 있잖아요. 뭔가 좀 다 좀 배워야 되고 그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잘 ‘보이는’ 일이다 보니 쉽게 판단되고, 그게 본인의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줘서 내가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 좀 더 배워야 되겠다. 이 분야는 내가 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배우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야가 있나요?
많죠. 저는 항상 느껴요. 일할 때마다 느끼는 것, 예를 들어 조판에 대한 스킬 같은 거요. 정답에 가까운 기준이 있긴 하지만 적히는 텍스트 내용에 따라서 사용하는 서체가 달라지고 그러면 조판이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이걸 시각적으로 봤을 때 어떻게 해야 잘 읽히면서도 텍스트의 내용을 감각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등이요. 인디자인 그렙 장인도 되고 싶고요. 그리고 주제를 효과적으로 시각화한 결과물을 볼 때마다 더 배워야겠다 느끼고요. 어떻게 해야 내가 그런 걸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요.
- 90년대생을 대상으로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하신 걸 보면 90년대생이신 거죠?
네 맞아요.
- 아직은 좀 더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는 시기인가 싶기도 하네요. 배우고 싶은 분야에 대한 답변을 들어보니까 전통 시각 디자인 쪽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요. 저는 오히려 요즘에는 스튜디오에서 구인을 할 때 그래픽 외적인 기술을 우대 사항으로 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좀 더 그런 쪽에 대한 답변이 돌아올 거라고도 생각을 했는데요.
맞아요. 요즘 코딩이나 3D도 잘하는 디자이너를 우대하죠. 다룰 수 있는 툴이나 언어가 많으면 표현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져서 좋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너도나도 디자이너가 기술적인 분야마저 잘해야 하는 분위기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멈춰있어도 무리 없는 그래픽을 움직이게 하고 반응하게 하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물론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상에서는 그런 것들이 시선을 확 끌어서 유리하겠죠. 그런데 아직까진 제 몫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더 배우고자 하는 것은 전통 시각 디자인이라기보단 기본기라고 생각해요. 기본기부터 잘 다져놓아야 다른 걸 더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아요.
- 배움이 주 목적인 학교에 있다 보니 더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이 하나의 추세로도 보이더라고요. 그래픽 디자인은 기본이고 어떤 걸 더 배울지, 3d를 할까 아니면 코딩을 할까 하는 고민을 해요. 모두가 그런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누구라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건 너무 가혹해요. 그렇게 되면 디자이너가 거의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는 거 아니에요? 편집 디자인만 잘하기도 힘든데 3D나 개발도 잘해야 하고... 그런다고 페이를 2, 3인분으로 주나요?
- 맞아요.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선망하는 직장 중 하나가 소규모 스튜디오이기도 하다 보니까 더 그런 면이 부각되는 것 같아요. 큰 회사가 아니라 추가 인력을 충원하기 어려운 경우라 많은 역량을 요구하는 것 같기도..? 본인이 뭔가 독립해서 스튜디오를 차리겠다고 한다면 좀 더 집중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저도 이렇게 말은 하지만 매일 밤에 생각해요. 나도 코딩해야 하나?
- 자연스럽게 시작한게 아니고 해야 된다는 강박으로 시작해서 일인자가 되기까지는 너무 힘들 것 같달까요..?
결론적으로는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좋은 것 같네요. 그리고 굳이 일인자가 되려고 하지 않아도... 디자이너인데 코딩을 잘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으면 그 중 누구는 저런 방식, 누구는 이런 방식으로 잘 하는 것일 테니까요.
- 동의해요. 최근에 새롭게 배운 사실이 있다면요? 디자인 외적으로 배운 사실도 좋아요.
최근에 새롭게 배운 사실이라.. 제가 올해 1월부터 향수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향수를 골라 사보기도 했고요. 아르마니 프리베의 '베티베티베'라는 향인데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시트러스 베티버 향수에요. 이런저런 브랜드의 향수들을 시향하고 사 모으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향조와 원료들을 알게 됐어요. 저는 향조로는 시트러스, 프레시 스파이시, 우디를 좋아하고 노트로는 베르가못, 베티버, 핑크페퍼, 오렌지 블라썸을 좋아해요. 향수는 서로 다른 크기의 입자를 가진 향 원료들을 알코올을 비롯한 화학물질과 섞어 만드는데, 가벼운 입자는 먼저 날아가 탑 노트를 형성하고, 무거운 입자는 제일 늦게 날아가 베이스 노트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조향사들이 향수를 스토리텔링 하기 위해 노트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도 관심 있게 봤고요. 제가 좋아하는 향수 중에는 일본 만화 '공각기동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향수가 있는데요, 기계 안에 들어간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탑노트로는 유자와 헥실 아세테이트, 물향을 써서 날카로운 쇠향을 은유적으로 표현했고 미들노트로는 우유향과 피부향, 자스민향을 섞었다고 해요. 베이스로는 파우더리한 향을 내는 바이닐 과이어콜, 머스키한 향을 내는 암브록산과 모스향을 섞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정말 기계 안에 있는 인간이 떠올라요! 아무튼 향수는 정말 재밌는 것 같아요. 특히 사용하는 순간부터 공기 중으로 퍼져 사라진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지 않나요. 계절과 뿌리는 사람의 체취에 따라 같은 향수지만 다른 향으로 느껴지는 것까지도요.
- 만화를 모티브로 만든 향수라니 멋지네요. 서울에서 제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장소가 있나요?
아무래도 지방에서 와서 그런지 광화문이나 경복궁, 서촌, 북촌 쪽을 가게 되면 대구 촌놈, 상경했구나 하고 실감되는 게 있어요. 그래서 그 동네를 되게 좋아해요. 특히 광화문을 좋아하는데, 일단 제가 살았던 대구에는 그렇게 고층 빌딩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없어요. 거긴 새벽에도 불이 켜져 있어서 바쁜 대도시의 낭만을 느끼게 해줘요.
- 오히려 저는 대구가 좋아요.
정말요? 오히려 저는 부산이 더 좋은데... 이번에 친구들이랑 부산 비엔날레 다녀왔거든요. 여행 마지막 날 저녁에 택시를 타고 광안리에 가는데 옆으로 바다가 보이는 거에요. 그때 진지하게 이곳에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대도시를 좋아하면서 바다도 좋아하거든요.
- 부산 살기 좋죠. 대구는 좋냐면 대구에서의 기억이 좋거든요. 대구 갔을 때 사람들이 다 너무 친절한 것 같은 거예요. 대구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자리 비켜주는 걸 엄청 오랜만에 봤거든요.
저는 대도시를 좋아해서 그러니까 대구에서 자라서 보는지 몰라도 대도시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근데 이제 또 서울이나 대구에는 바다가 없잖아요.
- 그건 또 그러네요. 다음에 관심 있으시면 대마도랑 엮어서 한번 방문해보세요. 부산이랑 정말 가깝거든요.
디자이너 중 내향적이신 분들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렇고요. 그래서 대면으로 대화에 응해주신 게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타인을 대할 때 따로 노력하시는 지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저 사실 엄청 내향적이에요. 그런데도 대면 인터뷰를 하겠다고 한 건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였어요. 화상 미팅이나 서면 인터뷰는 재미없잖아요. 제가 이렇게 1:1 인터뷰를 요청 받은 건 처음이기도 하고요. 엄청나게 떨면서 왔는데 즐거운 시간인 것 같아요. 미팅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첫 미팅은 무조건 대면 미팅을 하려고 해요. 아무래도 서면으로 했을 때, 메일이나 문자로 주고받는 텍스트로는 한계가 있잖아요. 감정을 읽기도 어렵고요. 그 후에는 서면이나 화상 미팅으로 진행해도 상관없죠. 저에게는 첫 단추를 잘 꿰매는 느낌이랄까요.
- 저는 서울에 와서 처음 일을 할 때 사람 대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그래서 그냥 기계처럼 내 일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실 디자이너도 커뮤니케이션을 결코 배제하고 일할 수 없는 직업인 것 같기도 해요. 은근히 사람 만날 일이 많고 설득이 필요하기도 해서요.
맞아요. 인쇄소 기장님들부터 해서 클라이언트, 협업하는 모든 사람과 잘 소통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니까요. 저도 원래 이렇진 않았어요. 지금도 여전히 붙임성이 떨어지는 편이긴 해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 도전하고 싶은 것 대해서는 이야기했었나요?
각 잡고 글 쓰는 것을 도전해보고 싶은데요. 제가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턱 막힐 때가 많거든요. 그리고 동해에서 1년 살기. 2년 전 친구들이랑 했던 얘기예요. 당시 찾아봤을 땐 "동해 시내에 드디어 올리브영이 생겼다"는 블로그 글을 읽고 살짝 망설이긴 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동해에서 1년 살아보고 싶어요.
- 최근에 작업에 녹여내고 싶은 소재가 있었다면?
어떤 주제를 녹여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이미지적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정제된 느낌의 작업을 주로 해왔기 때문에요. 색도 잘 안 썼고요. 그래서 밀도 높고 화려한 걸 해보고 싶어요. 제가 그런 걸 했을 때 어떤 게 나올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 앞으로 어떤 게 나올지 기대되네요. 지금 상황에서 하고 싶은 일이랑 해야 할 일, 어떤 데 더 비중을 두고 계신지.
지금 상황에서는 '해야 할 일'이 우선이죠. 일과 과제를 해내는 것만 해도 시간이 너무 빠듯해요. 그중에서도 재밌는 걸 먼저 하는 편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외주가 우선이에요.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걸 다 떠나서는... 제 위치에서 해야 하는 일을 하고싶어요.
- 작업 외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 디자인에도 드러난다고 생각이 들어서, 최근에 재밌게 본 콘텐츠나 본인이 관심이 두고 있는 영역이 있는지 궁금해요.
작업 외적으로는 아까 말씀드렸듯, 향수를 좋아하고 또 일본 가수 아이묭의 노래들... 요즘은 예쁜 목도리와 장갑, 후디를 찾는 재미에 빠졌어요. 사실 고등학생 2학년까진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그땐 셀린느, 랑방의 여성복들을 좋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누워서 쉴 땐 유투브나 OTT를 보는데요. 최근엔 일본 드라마 '스펙'을 재밌게 봤어요. 일본 배우 카세 료를 좋아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하루만에 다 봤습니다. 아! 그리고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도 정말 좋았어요. 마지막엔 꺼이꺼이 울다시피 했어요. 관람 후에도 여운이 남아서 몇시간은 울었어요. 가능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거든요.
- 세상에 불만이 있다면.. 저 같은 경우는 사람들의 선택이 너무 집단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런 게 좀 불만이거든요. 어떤 불만이 있으신가요.
지하철 내리기 전에 타는 것,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한국에서 동성 결혼 안 되는 것 등이요.
- 최근에 제가 불만이 많아져서 이런 질문을 넣어봤던 것 같아요.
서면 인터뷰였으면 100개 정도 써서 전달드렸을텐데...
- 못 읽어본 게 아쉽네요...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더 열심히 놀고 싶어요.
- 10년 후의 나에게.
어렵네요. 고민해보겠습니다.